권지안 작가는 음악을 캔버스에 그린다. 그것도 붓질이 아닌, ‘몸짓회화’로 완성한다. 한 작품을 위해 특별히 작사ㆍ작곡ㆍ편곡 과정을 거친 음악을 만들고, 그 음률에 맞춘 치밀한 안무구성을 짠다. 그리고 다시 오랜 시간 안무를 몸에 익힌 후에 음악에 맞춘 ‘퍼포먼스 회화’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말 그대로 결과물은 캔버스의 평면회화지만, 그 이면에 음악과 미술 두 장르가 혼합된 형식이다. 가수(솔비)이면서 미술가(권지안)인 스스로의 두 가지 장점을 결합한 작품이다. 그래서 이를 ‘셀프 콜라보레이션’ 시리즈라고 부른다.
가수 ‘솔비’라는 이름으로 더 먼저 알려진 그녀는 ‘잘 짜인 뮤직퍼포먼스 즉흥회화’라는 나름의 영역을 개척했다. 처음 그녀의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현장 혹은 영상으로 접하면, 대개 현장의 우연성과 즉흥성에 의존한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개월 이상의 치밀하고 헌신적인 인고의 준비과정을 필요로 한다. 마치 단 몇 분의 데뷔 쇼 무대를 위해 수개월에서 수년의 연습과정을 거친 가수와 첫 개인전을 위해 오랜 세월 자신만의 조형의지를 불태웠던 아티스트가 한 몸이 된 듯하다.
“작품들은 ‘계획된 우연성’의 결과입니다. 음악과 퍼포먼스, 물감의 색에 담긴 의미 등이 어우러져 ‘어떻게 그려지게 될 것’에 이르기까지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수없이 반복의 연습시간을 갖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의 현장 퍼포먼스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성이 가미되면서 순수회화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순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물감과 한 몸이 된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알 수 없는 내 안의 세계’를 끌어내게 됩니다.”
권지안 작품에서 진솔함이 묻어나는 이유 역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캔버스 안에 드러내 놓기 때문일 것이다. 종종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림을 시작했다’는 그녀의 말처럼, 기존의 미술이 지닌 고정적인 문법들이나, 보이지 않는 룰에 예속되길 거부한다. 오로지 ‘창작자로서의 직관성’에 몰두하는 과정으로 진정한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우리 역시 그 과정을 살펴보면서 가슴속에 응어리져 맺혔던 앙금을 풀어내는 카타르시스의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된다. 아마도 무엇보다 일등공신은 음악적 요소일 것이다. 음악은 창작자와 관람자를 잇는 무형의 끈인 셈이다.
여기에 퍼포먼스라는 몸짓이 합류하면서 청각에 이어 시각적으로도 만족감을 배가시키게 된다. 찰나의 순간에 공중으로 증발되는 음률들을 원초적인 내면의 몸짓으로 하나도 놓치지 않고 온몸으로 휘감아 잡아둔다. 천상의 하모니를 체득한 몸의 세밀한 움직임은 음표 낱낱의 리듬이기도 하고, 몸의 구석구석은 그 음들을 연주하는 악기가 되며, 캔버스 바탕을 휘젓는 강약의 터치는 열정어린 가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권지안의 몸짓회화는 찰나의 음률을 불변의 회화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과정 전체를 영상작업으로도 기록하고 편집한다. 마침 ‘친절한 지안씨’를 만나는 순간이다. 아마도 캔버스 화면만 본다면 어떤 큰 붓질로 휘저어 놓은 것이라고만 믿을 것이다. 하지만 권지안의 작품은 그 제작과정을 온전하게 기록하고 훌륭하게 편집해놓은 영상까지 제공된다. 때문에 관람자는 음악과 미술의 만남, 안무와 퍼포먼스의 조우, 빛과 어둠 등 상이한 여러 요소들의 융합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권 작가는 이를 ‘대중문화예술이 기반인 너무도 당연한 친절함’이라 설명한다.
마침 권지안 작가가 미술문화의 메카 인사동의 인사아트센터 1,2층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그동안 보여준 다양한 셀프콜라보레이션 시리즈의 연장선으로 이번 전시에선 ‘바이올렛(Violet)’이란 주제를 선보일 예정이다. 프랑스 안무가의 합류로 보다 흥미로운 생동감과 구성미를 자아낸 최근 신작의 영상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음악과 미술, 역동적인 퍼포먼스까지 한데 어우러진 권지안의 몸짓회화가 이번엔 과연 또 다른 자신의 어떤 모습을 깨우게 될 지 기대된다. 권지안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김윤섭: 평소 본인 작품에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권지안: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림을 시작했어요. 그렇기에 미술시장의 오래된 문법들, 보이지 않는 룰에 예속되기 보다는 더 무지해지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더 직관적일 수 있게 제 자신을 해방시키려 노력합니다. 그래야 겁먹지 않고 작업에 더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 매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지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 작품의 특징을 나타낼 수 있는 키워드를 몇 가지 꼽는다면, 간단한 그 이유도?
권: 첫째, 음악입니다. 음악 작업은 그림을 시작하기 위한 제일 첫 번째 작업 단계로 가장 중요한 작품 재료입니다. 둘째, 퍼포먼스입니다. 셀프콜라보레이션 작업의 두 번째 단계로 음악이 완성 된 후 퍼포먼스를 구상합니다. 음악이 작품의 재료라고 하면 퍼포먼스는 그림을 그려지게 하기 위한 작업 방법입니다. 레코드의 시대 이전의 음악은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갔습니다. 많은 이들은 그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음악을 그림 속에, 또는 시속에 담았습니다. 그림속의 악기들, 노래 부르는 입모양, 형상화 된 춤사위들을 음악을 담기 위해 그렸었습니다. 하지만 전 퍼포먼스를 통하여 작품의 내용을 색, 선, 그리고 몸의 흔적을 통해 그려지게 합니다. 셋째, 영상작업입니다. 미술을 접했던 초기 시절에 어느 노 작가의 추상화 전시를 보러갔다가 작업에 대한 설명들이 너무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글들로 나열이 되어져 있어서 미술은 참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퍼포먼스하는 모습을 영상 작품으로 만들어 제 미술 작품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이 작품이 그려졌는지를 연상하게 하고 싶었고 노래 가사를 통해 작품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를 돕고 싶었습니다. 대중문화예술이 기반인 저에겐 너무도 당연한 친절함이라 생각합니다. 넷째, 계획되어진 우연성입니다. 음악과 퍼포먼스, 그리고 물감의 색에 담긴 의미, 그리고 어떻게 그려지게 될 것이라는 예상까지 행위 이전의 모든 것들은 오랜 시간 계획되어집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실제 퍼포먼스 작업 전에 물감이 있는 상태로 리허설을 하지 않습니다. 물감에 미끄러져 동작이 흐트러졌을 때 제 자신이 더 집중하게 되고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퍼포먼스가 이끌려지고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알 수 없는 내 안의 세계를 끌어내게 됩니다. 그래서 퍼포먼스 페인팅 후에 중간부터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험들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 전체 작품 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