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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 내 이름은 권지안_리듬S

김승민 큐레이터

동시대 미술 큐레이팅 철학박사 (PhD)


내 이름은 권지안

온통 난장판인 뒤죽박죽되어 들리는 그녀에 관한 기사들.

“표절이다” “썩은 케이크다”, “그림이 전공도 아니면서…”,

대중들은 이리떼처럼 그녀를 물어뜯어 댔다. 그리고 그사이 그녀가 사랑하는 그녀를 응원하던 부친조차 그녀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다. 불과 반년 남짓한 시간 속에 그녀가 험난한 파도 속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을 때, 나는 그녀를 절망케 했던 몇몇 셀러브리티의 죽음을 떠올렸고 불안하기조차 했다. 그녀는 그 처절한 싸움을 용케 버텨냈다. 내가 올해 초 그녀를 다시 서울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내가 기억하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이제는 전투력이 더 상승한 것 같아 보였다.

지금부터는 왜 그녀가 다른 의미의 아방가르드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먼저 떠난 몇 명의 셀러브리티가 남겨놓은 SNS 계정을 방문해 보았다. 얼굴 없는 사형집행형 무리가 점령했던 그 가상 공간에는 ‘보고 싶다’는 팬들의 글이 헌화처럼 지금도 받쳐지고 있었다. 지독한 모순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순간, 솔비가 짊어져야 했던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슬픔과 아픔의 무게가 내 어깨 위로 담겨 왔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화려한 변신을 지켜봤다. 바로 최전방에서 온몸으로 맞서는 아방가르드로의 변신이었다. 그녀의 변신은 고치에서 나비로 태어나듯 어둡고 황량한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고를 거쳐 태어난 정신적 변신을 담고 있었다.


아방(Avant) 가르드(Garde)란 ‘Advanced Guard’의 불어로 최전방에서 싸우는 자로 예술에선 가장 앞서가는 예술가를 지칭한다.

그녀는 아티스트(artist)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의 하이브리드 적 존재인 '아트테이너(artertainer)’로서의 아방가르드이다.

리듬 0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는 퍼포먼스 아트의 대모라 불린다. 행위예술을 그녀 없이 논할 수 없다. 2010년 전 세계 최고만이 설 수 있는 뉴욕 현대미술관 (MoMA) 무대에서 열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회고전 제목은 ‘The Artist is Present -예술가가 여기 있다’ 이다. MoMA 전시 인터뷰에서 그녀는 지금까지 했던 퍼포먼스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작품으로 ‘리듬 0’ 와 ‘정지된 에너지¹’을 언급했다.

때는 1974년. 관객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녀의 퍼포먼스는 항시 비난과 관심을 몰고 다녔고 논란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는 차츰 관객들로부터 ‘예술’로써 인정을 받게 된다는 아이러니도 있다. 하지만 이를 혐오하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즉, 과도한 신체의 표현을 마소히즘적이라고, 그녀를 선정주의자라 손가락질했다.


¹ 4월 1일부터 필자가 기획하는 소마미술관 전시 <몸 맘 : 몸과 맘의 뫼비우스>에서 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정지된 에너지> 영상작품이 관객에게 선보여진다.


이러한 혹평과 비난에 대해 마리나는 ‘Rhythm 0’을 보여준다.

공간 한가운데 그녀가 서 있다.

그녀 곁의 탁자 위에는 다양한 오브제가 놓여 있다.

장미, 깃털, 총, 수술용 메스, 채찍, 포도, 꿀, 가위, 와인..


관객들은 처음에는 굉장히 부끄러워하고 주저하면서, 그녀에게 장미를 바치기도 한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그리고 관객들은 점차 이 이상한 게임에 몰입되어 간다. 그녀는 그 모든 학대를 받아들인다. 관객들의 감정은 고조된다. 무려 6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녀의 목은 칼에 베이고, 옷은 찢겨 나가고 마침내 나체가 된 그녀의 다리 사이로 관객은 칼을 겨눈다. “끝났습니다”라는 갤러리스트의 말이 떨어졌을 때, 총구는 그녀를 겨누고 있었다.


마소히즘적이다라는 그녀에 대한 평가에 대놓고 항거한 작업인 것이다.

“그러면 당신들은요?”라고, 그녀는 반문하고 있었다.

나는 ‘Rhythm0’ 을 보며 솔비가 곪은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갑옷을 입기 시작한 ‘셀프 콜라보레이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속에서 말하고자 했던 언어를 발견했다.

‘셀프 콜라보레이션’ 첫 시작 - 트레이스

그녀가 처음 데뷔한 2006년도는 카세트테이프가 주된 음원의 매체로 포털사이트는 거의 초기 단계였다. 종이 신문상의 기사에 대해 대중들은 비난 댓글을 달 수가 없었기에. 그러나 포털사이트 세계에서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그 공간에서는 셀럽은 자칫 이리 무리 속에 던져진 양의 존재가 되기 쉽다. 그리고 맹수들의 Feeding Frenzy(포식자들의 광란의 먹이 쟁탈전)가 시작된다. 댓글 문화가 피해자에게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가혹하고 잔인한 행위였다.

2009년, 온라인에서 돌기 시작한 그녀 이름의 동영상. 그 가짜 동영상은 카카오톡의 등장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최초 유포자를 밝혀내지 못한 채 그 사이버 테러는 2011년 2월, 2차 확산이 시작되었고 급기야는 그 동영상은 부모와 친구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뿐 만 아니라 폭력은 사회 속에도 많다. ‘Me Too’로 표면에 나온 것은 빙산의 일각. 입을 막고 이야기 안 한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그녀는 그 상처를 ‘액션 페인팅’을 빌려 표현했다. 그녀가 강조한 것은 ‘카메라를 등지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과는 반대로, 자신은 카메라를 마주한 채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이었다.

흔적으로 시작해서 흔적으로 마무리되는 제작 과정 속에, 작곡하고, 가사를 쓰고, 목소리는 새로운 악기가 되어 남겨졌다.



그녀의 몸이 그려내는 안무의 흔적은 캔버스 위에 그림으로 남겨진다. 그녀는 시종일관 카메라를 응시한 채 이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카메라에서 쏟아져 내리는 그 강렬한 백색의 라이트! 눈이 멀어 버린 듯한 백색 불빛 공간 속은 육신과 정신마저 증발 시켜 버릴 듯한 공포마저 안겨준다. 그녀는 그 완벽한 자기만의 백색 공간 속에서 상처받아 피 흘리는 그녀 영혼의 뿌리를 부끄럼 없이 보여준다. 그것을 나는 ‘리듬0적 표현’이라고 이름한다.


혼란, 블랙스완

백조와 달리 블랙스완은 마냥 아름답지만 않다.

해변의 셀러브리티의 스냅 사진처럼 SNS 계정을 온통 장식했다가 파도의 포말처럼 아주 쉽사리 지워져 가는 얼굴들. 나는 그녀의 세계를 해변의 남자와 비교한 적 있다. 그 모두가 알지만 잘 모르는 그 내면을 말이다. 얼굴은 낯익었지만 실은 그 정신세계는 전혀 모르는 허상 같은 존재들. ‘그 허상 속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때? ‘라고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 허상 속으로 들어가 보렴”


그녀는 어린아이가 되어 그 환상의 세계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 환상은 이내 환멸과 고통의 검은 세계가 된다. 하양과 검정으로 분리된 자아 속에서 어린아이는 울부짖는다. 블랙스완에서 그녀의 퍼포먼스에 음악을 덧씌워 그녀 속의 ‘혼란’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상현실이 등장해서 흰색과 검은색의 자아 속 분열된 모습은 음악과 연결된다.


블랙스완 작품 이후, 그녀는 더욱 대담해진다. 즉 자아에 대한 대담함이었다.

가수로 데뷔한 지 10년. 그러나 그녀의 의식에 자리한 ‘자아’는 달랐다. 그녀는 대중들에게 보여지기 위했던 소비했던 자아가 아닌 보여주고자 했던 참된 모습의 자아를 찾아 나섰다. 그래서 ‘신데렐라’를 꿈꾸는 사람들의 뇌 구조를 그리게 된다.

노래를 부르고 성공하고, 그리고 행복해지고.

모두가 꿀 수 있는 꿈을 순수하게 꿨을 뿐인데 여러 벽에 부닥쳤던 그녀의 모습과 반대로 사람들이 소비하고 그리는 간략한 뇌 구조.

가수를 꿈꾸며 달려왔지. 그런데 나는 어느새 인형이 되어서 팔려나가고 학대 되고 버려져서. ‘나를 어디서 어떻게 발견하지?’ 그녀는 자신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대중음악 장르 영역을 탈피해서 더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그런 필요를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거울로 만든 큐브 속에서 그녀는 흰 백조와 검은 백조가 되어 노래하면서 작업을 했다. 그 큐브를 해체하자, 각각의 거울이 독립된 작품으로 태어났다. 나는 그 독립된 작품 속에서 그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미로’의 흔적을 찾아냈다. 발자국과 뿌려진 물감들 사이로 나는 어떤 ‘미로’가 그려진 것을 봤다. 그렇게 자칫 버려질 뻔했던 그 작품은 ‘메이즈’로 탄생하게 되었다.


SNS World

우리의 대화는 그다음 ‘직지’ 전시 작업으로 이어졌다.²

이때는 <직지, 금빛 씨앗>이라는 전시를 기획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트레이스와 블랙스완에서 직접 말하지 않은 상처의 원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직지’는 금속활자의 발명을 상징하는 거대한 정보 혁명의 중심이었기에, 그 맥락 안에서 그녀가 에둘러 이야기하던 그 가상 공간의 폭력에 대해 좀 더 직접적으로, 위트 있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결혼하는 것처럼 가짜 소문을 퍼트리면 어떨까?”

디지털 시간이 갖고 온 ‘인간을 소비시켜버리는’ 픽션엔 논픽션을 작품을 통해서 표현하자는 계획이었다.

“나에 대한 악플이 디지털 월드에서 박제했듯이,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사는 것에 대한 지금 사회에 강한 메시지를 주고 싶어.”

어떻게 보면, 그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거울에 둘러싸인 세상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함축된 작업이다.


²2016년에 기획한 <직지, 금빛씨앗>은 제1회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의 주제 전시로, 론 아라드, 윌리암 켄트리지 등 미술, 디자인, 건축을 망라한 40명의 참여작가가 ‘직지’를 ‘창의적 씨앗’으로 해석한 전시였다.


그리고 또다시. 처음 시작했던 공간으로 들어가 한 ‘레드’

SNS World를 통해 미디어의 허구성을 제시했던 그녀는, ‘레드’에서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거나 말하지 못하는 ‘미디어’ 속에 숨겨진 파괴력을 말하고자 했다. 그것은 용기의 문제였다.


KBS ‘뮤직뱅크’.


그녀는 이 안에서 노래를 했었고, 많은 사람이 그 무대를 꿈꾸고 있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 무대에 다시 선다. 공중파가, 뮤직 프로그램의 영향력에 대한 일종의 실험이었다.



꿈을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위험, 그리고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를 이 ‘뮤직뱅크’에서 호소했다. 그리고 이 퍼포먼스는 나만의 트라우마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겪었던 전 여성의 트라우마라고 말한다.

그 트라우마를 ‘레드’ 퍼포먼스를 통해서 고발한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가족들이 저녁 먹으며 보는 뮤직뱅크라는 공영방송 프로그램에서 제기 발랄한 걸그룹들이 춤추고 노래하는데, 시뻘건 물감을 몸에 바르고 낚아 채이고, 바닥에 패대기 쳐지는 퍼포먼스를 한다.

가족들이 모인 저녁 식사 시간의 ‘뮤직뱅크’. 제기 발랄한 걸 그룹들의 현란한 무용과 노래 속에서, 그녀는 온통 붉은 물감을 덕지덕지 바른 그녀의 몸이 이리저리 마구 집어 당겨지고, 내팽개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아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에 대체 뭐하는 짓이냐”는 아우성에 그녀는 반문한다.

‘짧은 치마를 입고 관능적으로 춤을 추는 아이돌은 괜찮아요?”

“가족들이 보는 이런 예술 프로그램에 웬 쇼”라는 질문에 “쇼와 예술의 차이는 뭐죠?”


블루

그녀에게 이브 클라인에 이야기를 해줬다고 치자, 그녀는 기가 막히게 스펀지처럼 그 속의 세상을 담아낸다. 마치 투영된 빛의 굴절로 하늘의 블루가 태어나듯, 미술을 하며 그녀는 또 다른 세계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질문은 좀 더 구체적이 된다. ‘소비 사회에서 계급 사회는 뭘까?’라고 그녀는 반문한다. 어쩌면 모두가 생각하는 데 말하지 않는 물질 계급주의를 그렇게 표현한다. 자신이 그림을 그리며 변화시킨 이미지처럼 그림도 고급스러운 슈트로 제작된다. 그리고 그 슈트를 현장 해프닝으로 경매를 해버렸다. 퍼포먼스 현장에서 낙찰자에게 그녀의 그림이 슈트로 되어 입혀진다. 백남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술은 고등 사기”라고.



바이올렛 - 레드랑 블루를 섞으면 바이올렛

색깔의 교배로 태어나는 이종의 색. 그 태어남은 끝이 없다.

프랑스 파리로 간 그녀는 인간의 죄의 씨앗을 찾아간다.


인간은 사랑에 의존하고 죄를 치유 받지만, 원죄는 그렇지 못하다. 작품 ‘아담과 이브’에서 그녀는 현장에서 현대 무용가와 콜라보레이션을 한다. 말로 입었던 상처를 인간 사이의 느낌으로 치유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제는 언어로 인해 상처받음을 다시 언어를 지우며 작업한다.



핑거 페인팅

그녀는 바이올렛 퍼포먼스를 하러 파리에 갔을 때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인상파 화가들의 풍경은 밖에서 페인팅이 가능케 한 물감 때문도 있었다. 이제는 몸으로 부딪치는 그림보다 무용한 바람을 더 그리고 싶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꽃을 좋아했다. 늘 실질적인 것보다 예쁜 꽃을 좋아하는 아빠는 늘 그녀에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는 아빠였다. 그래서 어릴 때 늘 돈에 쫓기는 그 모습에, 아빠는 꽃 장사를 하면서 팔고 남는 꽃을 집에 갖고 왔고, 엄마는 그걸 싫어하셨다.

이젠 어른이 되어 엄마도 아빠도 이해하게 됐다.


근데 아빠가 그 꽃 그림을 보시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케이크

페인트를 만지며 질감에 몰두해 있을 때 아빠가 아프시기 시작했다. 작업실의 1층이 빵집이었으니까 케이크와 빵 재료 자연스럽게 이끌렸다. ‘이 크림은 왜 그렇게 화려하게 겉옷을 입을까, 나만의 케이크는 무얼까.’

페인트를 만지듯 빵 재료를 만지작만지작하다가 생각한다. 나도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녀가 늘 가던 보육원 봉사에 따라가곤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갈 수도 없었다. 그녀는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고파, 이 빵집에서 케이크 판매 수익금을 경동원에 기부하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만든 케이크들에 제프 쿤스를 표절했다 난리가 났다.


다시 ‘리듬 0’가 생각난다. 어쩔 수 없이 이런 논란 자체가 그녀의 작품을 제도권에 편입되게 이슈를 만든다. 즉 비전공자가 무슨 그림이냐 하면서, 20세기의 작가 제프 쿤스를 카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비난을 한 사람들은 모른다. 그 기사 나왔을 때 그녀는 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하셨고, 그녀는 2021년 1월 1일 새해가 뜨기까지 악플에 시달렸다.



‘여기서 무릎을 꿇으면 군중 속에 노예가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너무 다 허무함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서 노래를 하고 작업을 하는데 가사가 허밍으로 나왔다. 그 작품이 ‘허밍’.

아빠가 돌아가신 후, 그녀에게 찾아온 텅 빈 우주. 허밍이 그녀가 기억하는 언어였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허밍’이다.


이제 여기 탁자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그녀는 그 위에 그녀가 살아오면서 소유해야 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놓는다. 달콤한 케이크, 버려진 꽃들, 피 묻은 천, 깨어진 거울 파편, 씹을 수 있는 가십거리,

그리고 플래시의 백색 섬광.


그 속으로 하얗게 산화해 버리는 그 모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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