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이사람] 솔비 "몸을 붓 삼아...'캔버스 무대' 오르니 마음의 상처 사라졌죠"

<가수에서 화가로 변신한 권지안 (솔비)>

'타이푼'으로 데뷔 사랑 받았지만

슬럼프 겪으며 힘든 시간들 보내

심리치료사 조언 듣고 미술 시작

2012년부터 권지안으로 작품 공개

'음악+그림' 셀프컬래버레이션 도전

레드·블루·바이올렛 잇따라 선보여

8월 상하이·10월엔 파리서 전시

많은 사람과 교감...치유 선물할 것



[서울경제] 이브 클랭(1928~1962)이라는 프랑스 화가가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이브 클랭의 국제적인 푸른색(InternationalKleinBlue·IKB)’으로 특허까지 받은 파란색의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인체측정’은 누드모델의 몸에 롤러로 푸른 물감을 묻힌 다음 바닥에 펼쳐놓은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구르게 해 ‘몸을 붓 삼아’ 그린 작품이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의 카페 겸 작업실, 가수 솔비로 유명하지만 미술 작업을 할 때는 본명 권지안(35)이고 싶다는 그를 만나러 간 그곳의 첫인상이 이브 클랭의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청명한 하늘이 내려앉은 듯 새파란 작품이 바닥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가로세로 4m의 거대한 파란 캔버스 위로 구름 같은 하얀 덩어리들이 떠다니고 그 위로 노란색들이 춤춘다. 드문드문 경쾌한 노란 발자국도 보인다. 자유롭게 하늘을 거닌 이 사람, 권지안이다. 붓이 아닌 손으로, 손을 넘어 온몸으로 그리는 퍼포먼스형 화가로 그를 만났다.


권씨는 솔비라는 예명으로 지난 2006년 혼성그룹 타이푼의 메인 보컬로 데뷔했다. 일주일 만에 음악사이트를 점령하고 음악방송을 들썩이게 했다. 예능프로그램에서는 특유의 거침없는 언행으로 ‘4차원’ ‘백치미’의 친근함부터 순수와 기발함에 대한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2008년 그해 방송사 시상식을 휩쓸었다. 인기의 절정에서 시련이 닥쳤다. 가짜 음란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하면서 엄청난 마음고생을 했다. 훗날 누군가 재미삼아 올린 가짜 동영상이라는 게 밝혀졌지만 “아니라고 했는데도 아무도 안 믿고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가해자가 된 시간들”을 보내며 얻은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았다.


“한번에 너무 잘됐죠. 잘나갈 때는 자고 일어나 보니 인생이 달라져 있더라는, 딱 그 말 같았어요. 그러다 2009년 사건 때문에 슬럼프가 왔어요. 5세 때 연예인이 되겠다 했고 14세에 극단에 들어갔을 정도로 연예인만 꿈꾸며 10대 시절을 보냈는데 막상 되고 보니 화려한 꿈과 그 꿈을 이룬 삶이 많이 다르더군요. 계속 일만 하다 보니까 나라는 자아는 사라지고 사람들이 아는 솔비만 있더군요. 권지안이 없어진 삶에서 혼란을 겪었어요.”


힘들어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배웠다. 피아노·드럼·향초·꽃꽂이를 배우고 혼자 등산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심리치료사가 미술이 잘 맞을 것 같다고 권했다. 처음에는 일기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 표현했다. 일러스트 형식의 구상적인 그림이었는데 그리기를 거듭할수록 구상의 형태는 무너지고 자유로운 선과 과감한 색만 남았다. 권씨는 “지금 보면 좀 유치한 예전 그림은 그 안에서 내 생각과 상상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점점 더 느낌대로 그리고 싶고, 색으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면서 “내 안에 나도 몰랐던 추상의 에너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는 권지안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신데렐라의 뇌 구조’ 등이 그 시절 작업이다. 그러다 2015년 지금의 소속사인 엠에이피크루의 이정권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가나아트갤러리 등 정통 미술계에서 10년 이상 일했고 지금은 미술콘텐츠제작사를 이끌고 있다. 권씨는 “이 대표님이 처음에 ‘그림과 삶이 일치돼 있느냐’ 물었고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그림으로 그린다며 ‘그렇다’고 답했다”면서 “그 후 내 삶과 일상이 진정으로 녹아든 그림, 무대에 오르고 그림을 그리는 내 삶이 모두 담긴 그림을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혜성처럼 왔다가 유성처럼 떨어질 뻔한 권지안은 미술을 통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음악을 그림으로 바꿔놓는 융합형 예술인 ‘셀프컬래버레이션’에 도전했다. 우선 하고 싶은 얘기를 가사로 먼저 쓰고 내용에 맞게 음악을 만들어 편곡하고 퍼포먼스도 구상하는 식이다.


2017년 5월에 공개한 ‘레드’는 자전적인 내용이었고 충격적이었다. 음악과 함께 흰 캔버스 위에 순백의 옷을 입은 권씨가 올라섰다. 남성 무용수들이 검은색 물감을 뿌려댔고 앉아 있는 그녀를 쓰러뜨리고, 머리채를 잡고 끌고 다녔다. 음악까지도 섬뜩하고 괴기스러웠다.


“색깔 연작의 첫 작업인 ‘레드’는 투쟁하는 마음으로 여성의 상처를 얘기했어요. 여자 연예인으로 살아오면서 받은 불편했던 것들을 표현했는데 내가 받은 상처를 뜻하는 검은 색 때문에 흰옷이 더럽혀졌죠. 기듯이 다시 캔버스 위로 올라와 앉은 내 몸 위로 검은 옷의 남자들이 붉은 물감을 들이부었습니다. 제가 택한 빨강은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상처 받은 후에도 열심히 살아가려 하는 여성들의 의지와 부활의 몸짓이죠. 음악 속 카메라 셔터 음향은 연예인으로서 내 자신이 소비되는 존재임을 일깨웁니다.”


음악부터 퍼포먼스까지, 색의 선택 또한 치밀했다. 엉망진창이 된 그가 흰색 물감을 통째 부어 검은 상처를 밀어내려 안간힘쓰지만 덮였을 뿐 치유되지 않은 응어리가 보인다. 권씨는 “아무리 하얀색으로 가리려 해도 깨끗해지지 않는 그 상처가 우리의 현실”이라며 “그간 예쁜 모습만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었는데 내가 전하는 메시지에 집중해 고운 겉모습을 포기하고 망가지는 퍼포먼스를 보인 게 참으로 통쾌했고 좋은 자극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했던 레드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1년여 동안 꺼내지도 못했고, 나중에 다시 한 레드는 핑크빛이 좀 더 많아져 스스로 “조금 치유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상처를 이겨냈다.


그는 붓 대신 손으로, 온몸으로 그린다. “솔직히 붓은 불편하다”며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몸이나 손은 직접적인 도구라 더 잘할 수 있다”고 씽긋 웃었다. 손가락에 물감을 직접 묻혀 그리는 ‘핑거페인팅’은 질퍽한 물감이 내는 “리듬미컬하면서도 차진 소리까지” 맛깔나다.


즉흥적으로 보이는 퍼포먼스지만 음악 제작부터 무대 준비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노래보다 그림으로 무대에 오를 때 더 긴장된다. 지난해 5월 공개한 ‘블루’는 계급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계급을 뜻하는 단어 ‘클래스(class)’와 신분상승을 의미하는 ‘업(up)’이 노래에서 주문처럼 반복된다.


“갑질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시절이었는데 사람의 등급을 나누고 서로 올라서려 발버둥 치는 그 계급이라는 게 무엇인지 나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블랙라이트를 쏘면 색이 달라지는 네온 안료를 사용해 극적인 시각효과를 줬어요. 계급을 상징하는 외형적인 조건으로 양복 슈트를 떠올렸습니다. 격식을 갖춘 옷차림, 더 좋은 슈트를 입기 위해 더 좋은 자리에 가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퍼포먼스 직후 현장 경매를 통해 캔버스 작품을 재단해 슈트로 판매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재킷을 하나 갖고 있죠.”


작품에 대해 얘기하는 권지안은 방송에서 접하는 백치미 솔비와는 전혀 다르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다가도 이제야 제 모습을 찾은 듯하다. 연예인의 화가 겸업은 창의성을 확장한 참신한 도전으로 보일 수 있지만 때로는 유명세를 등에 업은 ‘취미 화가(SundayPainter)’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권씨는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고 13일에는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1·2층에서 대표작 70여점을 모은 대규모 개인전을 시작했다. 파란 바탕의 신작도 ‘바이올렛’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다. “바이올렛은 멍 색깔”이라는 그는 “멍이 들수록 더 강해지는, 사랑은 상처로 입은 멍을 치유하고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면서 남자 무용수와 함께 퍼포먼스를 펼쳐 작품을 완성했다.


미술로 상처를 극복한 그는 미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교감하고 치유를 선물하고 싶어한다.


“나를 미술전공자들의 숙련된 붓질이나 미술전문가들의 해박한 미술사적 지식에 비교한다면 많이 부족하겠죠. 내가 하는 미술은 무지에서 오는 용기도 크게 작용합니다. 나는 무지한 게 좋습니다. 모르니까 직관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요. 예술가는 감각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인데, 왜 미술을 하면서 너무 많은 지식을 알려주길 바라는지···. 너무 알면 그 안에 스스로 갇힐 수 있습니다. 나는 직관적으로 작업하고 그런 감각적인 것들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최대한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깨달으면서 어떻게 하면 내 안에 있는 것을 찾아낼까 고민합니다. 작품은 거짓말하지 않으니까요.”


권지안은 국내 개인전 이후 8월에는 상하이, 10월에는 파리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유명 연예인이지만 해외에서는 무명의 화가로, 묵묵하게 자신을 보여줄 계획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Sheis···


△1984년 경기도 안양 △2006년 그룹 타이푼 1집 데뷔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신인 음반상 △2008년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 △2008년 SBS 방송연예대상 예능 부문 베스트엔터테이너상 △2012년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방식’ 개인전 △2014년 용인대 뮤지컬학과 졸업 △2015년 가나아트센터 ‘트레이스’ 전시 △2016년 ‘블랙스완’ 퍼포먼스 및 전시 △2017년 ‘하이퍼리즘 레드’ 퍼포먼스 △2018년 ‘하이퍼리즘 블루’ 퍼포먼스 △2019년 파리 ‘권지안×방가’ 전시



“어른들은 솔비, 아이들에겐 ‘로마공주’ 미술관 언니랍니다”


“어른들에게는 솔비로 유명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로마공주’라고 불리는 미술관 언니랍니다.”


화가 권지안은 자신이 운영하는 동영상 페이지 ‘솔비타임즈’를 통해 미술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어린이 미술교육을 목적으로 공동제작한 ‘로마공주의 수상한 미술관’은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다.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자신이 직접 다녀온 해외 미술관과 작가 작업실을 소개했다. 프랑스에 있는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과 장 프랑수아 밀레의 작업실, 스페인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같은 명소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미술관과 명작에 대한 것도 좋아하지만 요즘은 뜻밖에도 제가 직접 핑거페인팅하는 영상이 인기더군요. 몇 십 분씩 손가락으로 탁탁탁 물감을 치고 바르는 소리뿐인데 귀 기울여 집중하더라고요. 요즘 관심이 높은 자율감각 쾌락반응(ASMR)처럼 그림 그리는 소리가 마음의 안정을 주나 봐요. 보다가 잠드는 아이도 있고 자기 전에 꼭 보여달라는 아이도 있다더라고요.”


권씨가 미술로 이루고 싶은 꿈은 소통이요, 자신이 그랬듯 공감과 치유를 나누고자 한다. 그 대상은 연예인 동료부터 일반인까지로 세상 전체를 아우르고 싶다.


권씨는 “아이돌그룹 멤버들을 초대해 그림을 그린 적 있는데, 예를 들어 마이틴의 멤버 한슬은 색으로 자신의 장단점을 표현했고 자신의 꿈을 그려 손톱으로 긁기도 했다”면서 “연습만 하며 사는 아이돌 후배들과 그림을 같이 그리면서 내가 터득한 치유방법을 알려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일반인의 경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 달에 한 번 참가신청을 받는다. 장흥의 카페 겸 작업실에서 모여 커다란 캔버스를 무대 삼아 각자 손발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그는 “방법 자체가 원초적이고 유치하지만 다들 재밌어하고 즐겁게 참여한다”면서 “예술을 매개로 사람들과 고민상담도 하고 함께 그림을 그리다 보면 모르는 사람들도 금세 친해진다”고 얘기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차 한잔 마시며, 소주 한잔 기울이며 분위기를 풀 수 있지만 미술을 함께하며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마음 깊은 곳의 사연부터 세계관까지 끄집어낼 수 있어요. 놀라운 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미술을 통한 나눔과 봉사는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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