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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색으로 어루만지다 _ 화성시문화재단 '화분'



화가 권지안

​캔버스 가득 물감을 뿌리고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나간다. 조용한 작업실에서 캔버스를 탁탁 톡톡 두드리고, 철벅 철벅 문지르는 낯선 소리가 들려온다. 하얀 캔버스에 예상치도 못했던 색들이 가득 차는 과정을 보고 있게 만드는 작업의 주인공은 화가 권지안, 가수 솔비였다. 춤을 추듯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듯 색을 섞고, 누군가를 위로하듯 캔버스를 어루만지는 그녀. 스스로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서일까. 그녀의 공간도, 작품도, 이야기도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글·사진 신혜진(기획홍보팀)

“그러다 미술도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 만난 선생님과이야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했어요.” 권지안 | 화가

작업실이 독특해요. 카페와 작업 공간이 분리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누구나 쉽게 올 수 있는 공간이네요. 어떻게 여기에서 작업을 하게 되셨어요?

장흥에 작업실을 둔 지 1년 반 정도 되었어요. 바로 옆에 가나아트 센터가 있어요. 거기에 선생님들을 뵈러 왔다가 지금 이 공간이 비어 있는 걸 발견하고 여기로 오게 되었죠. 처음에는 작업실로만 사용했는데, 가끔 방문하시는 분마다 공간이 넓고 예쁘니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주셨어요. 그래서 그림 그리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보여드리고,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느낌 자체를 항상 보여드릴 수 있도록 오픈 스튜디오 같은 공간을 만들게 되었어요. 이렇게 열려 있는 것이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저에게 잘 맞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 공간에서 저말고 다른 분들도 힐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힐링이 되는 예술. 실제로 가수 솔비가 그림을 시작해서 작가 권지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어요. 심리 치료로 시작하셨다고요.

어릴 때나 학창 시절에는 미술에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미술에 소질이 있다거나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어릴때부터 가수, 연예인이 되는 게 꿈이었고 그걸 위해 노력해서 원하는 꿈을 이루었는데 언제부턴가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제가 아는 저의 모습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다르고, 실제 꿈꾸던 것과 다른 모습들 속에서 활동을 이어가면서 마음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어요. 몸과 마음이 지쳐 우울증을 겪고 나서야 심리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고요. 심리 치료 선생님의 권유로 혼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도전해본 것 같아요. 피아노, 공예, 등산까지요. 그러다 미술도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 만난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이었는데 미술 기법이나 기교를 가르쳐주신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리는 방법이요?

한번은 어떤 걸 그리고 싶냐고 하시면서 지금 마음이 어떤지 물으셨을 때 제가 하늘과 땅 사이에 끼어 눌려 있는 느낌이라고 얘기했어요. 그럼 그걸 그려보라고 하셔서 구름에 끼어서 다리가 땅속으로 묻혀 있는 모습을 그렸어요. 마음을 그린 그림을 보고 선생님이 칭찬을 해주셨는데 ‘그림은 왜곡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잘하지 않아도 되고, 정답이 없다는 게 좋았어요. 말은 종종 내 마음과 달리 전달될 때가 있는데 그림은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반가웠어요. 그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빠져들게 되었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집중하고, 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선물하면서 소통의 기회가 생기는 게 기뻤고, 그렇게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면 아주 즉흥적으로 하시는 것 같아요. 팔레트나 붓을 사용하지 않고, 캔버스에 그대로 물감을 뿌리고, 손가락으로 색을 조합하고 칠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저는 작품에 대한 구상을 머릿속으로 하고 작업을 시작하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달리게 돼요. 제가 최근에 많이 하는 셀프콜라보레이션은 사전에 철저한 계획을 세워서 한 번의 퍼포먼스를 선보여요. 하지만 핑거페인팅은 정말 즉흥적으로 작업을 이어가요. 미리 색 조합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하얀 캔버스를 채워가면서 레이어드 되는 색깔, 컬러들 사이의 공간들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얼마나 새로운 색들이 나오게 되는지 작업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색의 조합들을 직접 그리면서 내 눈으로 확인하는 거예요. 사전에 색을 조합해보거나 연습하는 건 아니지만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색들을 계획하고, 색들이 만나면 어떤 색이 되는지 머릿속에서 순간순간 계산해보는 거죠. 저만의 시각이 그런 색을 통해 표현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하얀 캔버스를 바라보고 있으면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가야 한다는 마음과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나오고, 그 우연성들이 겹쳐서 무언가 다른 완성작을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그게 핑거페인팅의 묘한 매력 같아요.

작업을 하다가 실제로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는 없나요? 그럴 땐 어떻게 하세요?

당연히 그럴 때도 있어요(웃음). 그림이라는 게 작은 색이나 작은 점차이 하나로 정말 달라져요. 그리다 보면 ‘아 이 색은 쓰지 말았어야 하는데…’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죠. 어떤 색을 쓰고 어디서 멈추고 하는 것들이 모두 선택의 순간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선택에 후회도 있어요. 멈춰야 하는 순간을 아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후회가 드는 작품들은 저만의 공간에 두었다가 시간이 지나서 다시 봐요. 그럼 그 순간에는 또 다른 느낌들이 드러나거든요. 그러면 그 위에 또 다른 색을 입혀서 나름의 완성작을 만들어내는 거죠. 다른 기분과 감정을 입으면 또 다른 작품이 되는 게 그림의 매력 같아요. 어떤 때는 색을 선택하면서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지면 무의식이 춤추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며 리듬을 타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핑거페인팅을 계속하게 돼요.



어떤 기분일지 정말 궁금해요. 최근에 가장 기분 좋게 작업한 작품은 뭔가요?

빌라빌라콜라 카페 2층에 있는 ‘세잎클로버’라는 작품이에요. ‘우리는 행운(네잎클로버)을 찾기 위해 무수히 많은 행복(세잎클로버)을 짓밟고 있다.’는 문구를 보고 깊이 공감했어요. 그래서 제가 지나치고 있을지도 모를 많은 행복을 그리고 싶어서 세잎클로버 숲을 표현했는데 금빛과 어우러져 희망적인 느낌이 정말 기분 좋았거든요.

최근 파리에서 열린 ‘뉘 블랑쉬 파리Nuit Blanche Paris’와 ‘광주미디어아트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셀프콜라보레이션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하셨어요. 음악 하는 솔비와 미술 하는 권지안의 셀프콜라보레이션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작가들에 대한 책을 많이 읽고, 많은 작품을 보니 미술이 더 재미있어졌어요. 그래서 미술을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다가 2014년에 지금 엠에이피크루로 함께하고 있는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미술 분야에 조예가 깊은 분이라 미술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계속 물었어요. 사실 대표님은 그냥 그림 좋아하는 연예인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꾸준히 그림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테크닉이 뛰어난 사람은 많으니 그림을 잘 그리려고 하지 말고 그림과 삶을 일치시키라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림과 삶을 일치시킨다. 어렵네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삶과 그림을 일치시킨다는 게 뭘까. 그걸 숙제처럼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그때 음반 준비 중이었는데 계속 음악을 듣고 작사하고 안무를 고민하다 문득 ‘나의 일상은 음악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모두 음악에 담겨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연습하는 음악과 관련한 것들을 캔버스라는 무대 위에 나와 잘 맞는 물감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바로 대표님께 저는 음악과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고 무대 위에서 가장 강한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으니 대중 앞에서, 카메라 앞에서 그림을 그려보겠다 했어요. 그때 대표님께서 그거 재미있겠다 하셨고, ‘공상’이라는 첫번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아티스트가 모여서 지금의 엠에이피

크루 회사를 시작하고 퍼포먼스를 이어가게 되었어요.



이번에 동탄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현대미술로 바라본 여성인권_위안부 특별전>에서 셀프콜라보레이션 퍼포먼스 중 하나인 ‘레드’를 미디어 아트로 선보이신다고 들었어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림을 참 많이 보러 다니면서 어느 순간 추상화를 보고, ‘추상화는 왜 불친절하지?’, ‘나는 친절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쌓이게 되었어요.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요. 돌려 말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얘기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미술은 순수예술이지만 그 과정을 대중예술의 방식으로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레드’는 가장 저다운 방식으로 이야기한 작품 같아요. 저 자신이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이야기하고 임한 작업이에요. 여성으로서 연예인으로서 사랑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에서 사랑받기 위해 제가 꾹꾹 눌러오던 것들을 폭발시켜 보고 싶었어요. 그간 보여드리던 무대가 아닌 다른 모습을 늘섰던 무대에서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뮤직뱅크> 무대에서 ‘레드’를 선보일 수 있던 힘이 된 것 같아요. 모든 아티스트는 대중을 향해 일종의 ‘쇼’를 선보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퍼포먼스를 통해 건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쇼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저도 <뮤직뱅크>에서 선보인 ‘레드’를 봤는데, 상처는 덮고 있는 것 일뿐 지워지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와 닿았어요.

사실 처음엔 <뮤직뱅크>를 통해 제 작품을 본 분들이 모두 좋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어요. 주변 분들도 반대했었고요. 그래서 이게 맞는 걸까 고민한 순간도 있었고요. 그런데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난 이후에 해외에서 스페인 가우디 성당의 15개의 천사상 조각을 완성시킨 조각가 에치로소토 선생님을 만났는데, ‘레드’를 보시자마자 저를 안아주시더라고요.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었는지 알 수있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축하한다. 이게 삶이다.’라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스스로 위축될 수 있는 시기에 많은 용기를 주신 은인 같은 분이에요. 그래서 많은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저의 솔직함이 음악, 미술, 영상 등 다양한 장르로 분산되어 사람들에게 보이고 소통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저처럼 대중적으로 대놓고 쇼를 하는(웃음)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전달력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대중에게 아직은 낯설 수 있는 현대미술이라는 장르가 권지안이라는 대중성을 가진 작가를 통해 좀더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게 장점 아닐까요?

맞아요. 저는 많은 대중 앞에 서는 연예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더 많은 소통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제 그림을 사시는 분들 중에는 작품을 처음 사보는 분들이 무척 많아요. 그림을 좋아하지 않지만 영상 작품을 접하고 눈물을 보이시는 분들도 있고요. 저는 예술가들의 모든 활동의 본질은 감정의 교류와 영혼의 대화라고 생각해요. 그 어떤 것보다도 작가와 관객의 감정 교류가 제일 먼저 같아요. 예술가들의 일생이나 작품을 담은 책들을 보면 삶의 키워드는 다 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주요 키워드는 외로움, 고통, 슬픔, 행복같은 기본적인 감정이더라고요. 그래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어떤 경계로 나누는 것보다는 그런 키워드들을 어떻게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지가 차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를 보시는 분들과 어떤 감정의 교류를 나누고 싶으신가요?

사실 ‘레드’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주제로 작업한 작품은 아니에요. 더 크게 여성들이 가진 고통을 담고 있어요. 모든 여성은 작건 크건 여성들끼리 공감할 수 있는 상처를 가지고 있고, 전시를 통해 만나는 할머니들은 정말 너무 가슴 아픈 고통을 겪은 분들이시잖아요. 그래서 누군가의 고통이 아닌 나의 고통처럼 작품을 보시는 분들이 그분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처럼 아픈 역사도 지울 수는 없잖아요. 덮일 수는 있어도. 모든 게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기억하는 한은 계속 알고자 노력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작업을 보시고 다양하게 해석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양한 해석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고통받는 어떤 사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거예요. 그 주인공은 달라질 수있지만요.

화가로서 가수로서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실 예정이세요?

저는 가수로 데뷔한 지는 14년 차고, 그중에 8년은 미술 활동을 함께 했어요. 활동을 구분 짓기보다는 순간순간 무엇에 더 집중했느냐가 저를 나누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미술 활동에 집중해왔고요. 이젠 음악 활동에 집중하고 있어요. 음반 활동을 위해 노래 연습을 하니 이제 가수 같은 느낌이에요(웃음). 11월 13일 음반 발매를 준비하고 있어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림 그리는 과정이나 그림 ASMR도 꾸준히 소개하고, 미술에 대한 어린이들의 흥미를 높이기 위한 ‘로마공주의 수상한 미술관’도 계속 진행하고요. 또 내년에는 시흥에 빌라빌라콜라 2호점을 계획하고 있어요.



화성시문화재단에도 많은 분이 마음을 치유하고 자아를 찾기 위해서 다양한 이유로 생활예술 활동을 함께하고 계세요. 자기 자신을 위해 다양한 예술활동을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한마디 전해주세요.

저는 예술이 건강한 약이라고 생각해요.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정신적인 지주 같아요. 지금 그것을 찾은 분들은 축하드리고, 아직 찾지 못한 분들 그리고 하루하루 우울함과 싸우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예술을 만나보시길 권유할게요. 저는 행복이라는 게 환상 속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 환상이라는 건 무한하잖아요. 환상 안에서 누구나 예술가를 꿈꾼다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성공의 기준도 정답도 없는 예술가를 꿈꿔보시길 권합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hcfart/22176304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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